관찰과 시선











선선한 바람을 맞이하고 싶어서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이제 제법 쌀쌀하다.
난 추운 거 싫어하는데.
곧 옷장에서 두껍고 포근한 니트를 꺼내 입어야 할 것 같다.






얼마 전에 깨달은 게 있다.
익숙한 길은 땅만 보고 걸어도 목적지를 잘 찾아간다는 것.
급하게 연락해야 하는 것이 있어서 핸드폰의 메시지 창만 들여다보며 동네를 바쁘게 걸어간 적이 있다.
문자를 보내는 동안 나는 가려는 목적지도 잊고 이끌리는 대로 걸어갔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가려던 곳에 잘 도착해 있었다.






오늘도 그렇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강공원에 도착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토끼굴에서 나와 눈앞에 펼쳐지는 초록색을 만끽한다.
날씨가 선선해지니 한강 공원에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지나 한강 공원 안에 있는 작은 섬으로 이동한다.






예상한 대로 잔디밭에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아름다운 윤슬이 맺힌 한강이 찰랑거린다.
찰랑이는 물을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내려가보니 터덜터덜 힘들지만 애쓰는 직장인,
사랑스럽게 기록하고 기억하는 시인,
천천히 찾아다니고 기대하는 수집가가
계단 아래에서 노을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노을을 기다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물론 노을 구경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오늘은 어떨지 기대가 되지만)
노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저 먼 곳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왜 기다리고 있는 건지
해가 다 지고 나면 무엇을 할 건지
지금의 기분은 어떤지 궁금할 뿐이다.






각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을 걸진 않았다.
그냥 왠지 다들 나와 닮은 사람들일 것 같았다.
나와 성격이 비슷한 사람일 것 같으면 이상하게 그 느낌이 다가온다.






터덜터덜 힘들지만 애쓰는 직장인은
지금까지 잘 해오다가 오늘 한 가지 실수를 했다.
그 한 가지 실수로 인해 하루 종일 자책을 하기 시작했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회사를 뛰쳐나왔다.
빨리 집에 가겠다고 열심히 달려서 버스를 탔지만
강을 건너는 길에 창 너머 보이는 한강공원의 광경
자연스럽게 하차 벨을 누르게 만든다.
하지만 한강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오늘 일어난 일을 잊기엔 사람이 너무 많고, 더 복잡하게 만들 거 같았다.
최대한 사람이 없을 거 같은 곳을 찾으며 걸어 다니다가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사랑스럽게 기록하고 기억하는 시인은
가끔 모든 것을 상상에 맡기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이 딱 글을 쓰고 싶은 날인데, 아직 아무 느낌이 오지 않았다.
어디서 영감을 받을지 고민하며 sns에 들어갔는데
친구가 끝내주게 멋진 오늘의 하늘 사진을 올렸다.
그 사진을 보자마자 한강에 가서 저녁노을을 봐야겠다고 다짐하며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간다.
잔디밭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집중해서 보다 보니
저마다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표정을 기억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글을 쓰러
이 한강공원에서 가장 조용한 곳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천천히 찾아다니고 기대하는 수집가는
매일매일의 노을을 수집한다.
마냥 파랗던 하늘이 붉게 물들면 그렇게 경이로울 수가 없다.
매일 어떤 노을이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언제까지가 절정의 모습일지 모르기 때문에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오늘은 한강에서 펼쳐지는 노을을 수집하기 위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이 없는 자신만의 포토 스팟을 향해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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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을 기다리는 동안 마주친 세 사람을 관찰하며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상상한다.
나와 닮은 사람일 것이라 확신하며.......